역대 최고의 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따져봐야 할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지표는 단연 디자인이다. 아름다운 자동차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감흥을 선한다.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는 디자인 명작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나가는 엔지니어링 기술과 달리,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며 후세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입비스트>는 다섯 명의 자동차 전문가와 함께 오로지 디자인만으로 역대 최고의 자동차를 선정했다. 매일 같이 카메라에 자동차를 담는 포토그래퍼부터, 수많은 최신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 전문 기자와 유튜버, 자동차 공학을 전동한 연구원까지. 직업도 취향도 다른 이들이 고심끝에 고른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들을 소개한다.
1964 페라리 250GT 루쏘
검은색 1964년식 페라리 250GT 루쏘를 실물로 처음 본 순간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형제 뻘인 250GTO나 250GT SWB의 명성에 가려진 모델이지만, 디자인만큼은 그중 맏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두 차량이 잘 단련된 근육질 몸에 힘을 잔뜩 준 모양새라면, 루쏘는 그런 멋진 몸에 힘을 풀고, 잘 맞는 옷을 입은 모습이다. 늘씬하게 뻗은 측면 실루엣과 비율, 전반적으로 차분히 가라앉은 스탠스에서 우아한 아우라가 풍긴다. ‘럭셔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루쏘 이름에 걸맞게 실내에서도 운전자가 품격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청량한 날씨에, 멋지게 차려입고 이 차에 올라타 천천히 크루징하고 있는 자신을 그려보면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The King of Cool’, 스티브 맥퀸이 이 차를 데일리카로 타고 다녔다는 게 이해가 된다. 정영철, 에레보 대표
2017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Land Rover
매달 새로운 자동차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직업 특성상 이 차의 엔진이 어떻고, 주행 질감이 어떻고 하는 건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집 한 채 값의 차를 탔을 때도 ‘잘 나간다’는 것 이상의 감흥은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를 꼽자면 단연 랜드로버의 디스커버리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경주의 산길에서 선루프에 올라가서 하루 종일 촬영을 했는데 집에 와보니 배와 허리에 선루프 라인으로 멍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사연을 차치하더라고 찍는 내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다. 전 세대 모델에 비해 전체적인 인상은 둥글둥글 해진 편이지만 날렵한 인상을 풍기는 헤드라이트, 도어를 따라 일직선으로 그어진 캐릭터 라인이 풍기는 느낌이 좋았다. 참고로 자동차 촬영을 할 때는 빛 반사가 덜한 흰색이 좋다. 조혜진, 포토그래퍼
2022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투리스모 터보
Porsche
왜건이라면 무조건 환장하는 차쟁이들에게, 전기차 세상이 와도 왜건 디자인은 계속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는 차. 포르쉐의 첫 전기차인 타이칸은 현존하는 모든 전기차 중 승차감부터 출력, 그리고 운동성능까지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차다. 그런데 이런 차가 왜건형으로 출시됐다. 물론 세단형 타이칸의 디자인도 너무 훌륭하다. 전기차에 와서도 믿고 보는 포르쉐 디자인이다. 에어팟 헤드라이트라고 놀렸던 것도 잠시, 이제는 그 헤드라이트 조차 타이칸의 아이덴티티로 인식되고, 차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위압감과 강렬함은 파나메라 그 이상이며, 911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곡선과 칼같이 떨어지는 정갈함까지 녹아있다. 그리고 이제는 크로스투리스모가 되면서, 단지 왜건의 실루엣을 더 멋진 엉덩이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오프로드까지 커버할 수 있는 남성미 물씬 풍기는 과격한 휠 하우스 디자인까지 더해졌다. 8색조 매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차 아닌가? 윤성로, 유튜브 채널 ‘모트라인’ 대표이사
2021 지프 랭글러 2도어
Jeep
디자인은 취향이다. 누군가에게는 끝내주게 섹시한 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개 취향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신다면’으로 시작되는 속담과 비슷한 수준의 답변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프 랭글러, 그중에서도 2도어를 꼽은 이유를 늘어 놓아 본다면 이렇다. 첫째, 희소성. 랭글러 2도어는 도산대로를 기준으로 했을 때 포르쉐 911보다 보기 드물다. 둘째, 고유성. 군용차 ‘윌리스MB’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디자인은 어느 SUV와도 다르다. 셋째, 기능성. 예쁜 쓰레기는 필요 없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 궁금하다면 이 차를 보면 된다. 박호준, 에스콰이어 에디터
1955 포르쉐 550 스파이더
Porsche
‘스포츠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랑, 빨강, 주황, 파란색과 같은 강렬한 원색일 것이다. 하지만 이 편견을 깨준 자동차가 있다. 제임스 딘의 마지막 애마, 포르쉐 550 스파이더다. 지난 70년간 자동차 기술은 눈부신 도약을 거듭했지만, 550 스파이더에 구현된 유선형의 디자인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은색으로 뒤덮인 외장,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더한 시트, 포르쉐 로고가 새겨진 보닛 옆 제임스 딘의 모습을 본다며, 누구라도 이 차가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참고로 550 스파이더는 당대 자동차 신기술의 집약체로, 서킷과 로드 레이스에서도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해안 도로를 유유히 달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차이기도 하다. 김주한, 현대모비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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